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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믿음이라도 생명 줄이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 11:1 – 3)


"믿을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은 분명히 알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때문에 낙담이 됩니다. 이유가 충분한데도 의심하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불신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믿지 않는 것과 믿음이 약한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그러니 안심하십시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구원에 무심하거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데서 구원의 길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이 더해 가기를 소망하는 신자는 구원을 갈망하며 예수님 안에 구원이 있음을 안다믿음의 열매인 평안을 분명하게 경험하지 못했을지라도,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영생을 얻는다고 기록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 3:15). 그래서 설사 확신하지 못하고 반신반의해도, 그것은 믿음이다.

연약하고 작은 믿음도 믿음이다.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열매를 맺지 못할 정도로 아직 믿음이 작고 연약할 수 있다그러나 이렇게 믿음이 작은 사람들이라도 주님께 부르짖는다면, 그 기도는 성령이 그들 안에 거하신다는 뜻이며 그들이 이미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과연 부르짖어 기도하고자 하는 열망은 육체의 열망일까, 아니면 성령의 열매일까? 그것은 성령의 열매다.셩령이 내주하시는 사람 안에서 일하신다는 증거다그러므로 그들 안에 성령이 살아 계심이 분명하다! 바울은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 8:26) 하신다고 말했다. 기도는 그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역사다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는 사람은 그분께 나아오지 않는다. 거룩한 열망의 기도는 성령의 역사며, 작고 연약해 보일지라도 믿음의 증거다. 배 속 아기의 아주 작은 움직임도 감지하는 여인을 보라그녀는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고, 실제로 생명을 잉태했음을 확신한다. 셩령의 감동도 이와 같다. 우리안에 거룩한 뜻과 열망이 있다면, 믿음의 원천이신 성령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심을 의심해선 안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자신이 구원받지 못했을까 봐 두려워하며 반신반의한다고 해서 그 믿음이 참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연약하다는 이유로 죄를 합리화하거나 즐기려 하지 않는다도리어 그들은 의심을 포함한 연약함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확신을 얻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이 가로막힌다는 사실에 슬퍼한다. 그런 슬픔은 씨름이 되고씨름은 전쟁이 된다영과 육, 믿음과 불신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도 믿음은 있다. 다만 의심의 공격을 받을 뿐이다. 그때 그들 안에 있는 영이 의심에 맞서 싸우며 이겨 내고자 애쓴다.

 

의심이나 회의는 마귀가 우리 믿음을 겨냥해 쏘는 불화살이다. 바울이 증언한 대로 믿음의 방패로 맞서야만 그것들을 막아 내고 없앨 수 있다( 6:16). 어거스틴은 마귀가 속임수와 덫을 놓을지라도믿는 자의 마음속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므로 결국 쫒겨나고 만다고 말했다. 의심이 우리에게 몹쓸 짓을 할 수 있어도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한다. 우리는 상처를 입을지언정 곧 나을 것이다그것들은 우리 심령 깊은 곳까지 들어오지 못한다.

 

상한 갈대 같은 믿음이라도 꺾지 않으신다

 

아주 신실하고 모범적인 하나님의 종들도 이런 유혹과 공격을 받는다. 다윗의 인생 여정을 떠 올려보라. 그는 그야말로 믿음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다. 다윗이 언제나삶의 모든 순간에 믿음의 능력과 역사를 보여 주었는가아니다그는 대적 앞에서 믿음을 잃진 않았지만, 두려움과 절망으로 탄식하곤 했다. 시편 말씀이 이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내가 근심으로 편하지 못하여 탄식하오니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 때문이라 …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 55:2-5).

 

다윗의 예로 충분하지 않다면,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에 사도들의 믿음이 얼마나 작고 희미했는지 살펴보라.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의 구주심을 믿었지만그분이 고난받아 죽임을 당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실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사실이 바로 믿음의 기초가 되는데도 말이다심지어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도여전히 주님이 영적 나라가 아닌 세상 나라를 세우시리라고 생각했다 ( 1:6). 그들은 주님을 흐릿하게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아주 작은 믿음만이 있었다. 베드로는 주님을 세번이나 부인했다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믿음을 완전히 저버렸다고 말하진 않는다.

 

그 시절, 그들의 믿음은 얼마나 작고 연약했던가! 작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에 나갔다가  너울이 일어나 배를 집어삼키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이렇게 외쳤다"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8:25). 그때 주님은 그들을 믿음이 없는 자들이 아닌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 표현하셨다( 8:26). 주님도 그들이 믿음이 작아 두려움에 떨기는 해도 완전히 불신자들은 아님을 아셨던 것이다그들은 믿음으로 주님께 피한 덕분에, 기도 응답을 받았으며 위험에서 구원받았다. 이사야가 예언했던 대로그리스도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셨다 ( 42:3). 하나님의 자녀 중에는 상한 갈대만큼 연약한 자, 환한 빛을 내기는커녕 그을음과 연기만 낼 정도로 미약한 믿음의 소유자도 있다"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하나니” ( 1:17)라는 바울의 말에서도 이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 믿음에는 단계 또는 수준이 있는데그것은 하나님의 의를 알고 따르는 정도와 관련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멀리서 누군가를 바라보는 단계에서점 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가 누구인지 더 잘 알게 되는 것과 아주 비슷한 상황이다.

 

하나님 자녀 대다수는 성경에 등장하는 눈먼 사람과도 같다. 예수님이 치유해 주셨지만처음에는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 8:24)라고 밖에 말하지 못했던 사람처럼 말이다그러자 예수님이 그의 눈에 다시 안수하셔서 더 잘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그제야 그는 모든 것을 밝히 볼 수 있었다. 단번에 온전한 시력을 얻은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점점 더 잘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믿음도 이와 같다사도들을 통해 하나님께 더 큰 믿음을 구하도록 가르치신 주님은 아직 믿음이 아주 작아서 더 성장해야만 하는 자녀도 있음을 보여 주신 것이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개선할 점이 있는 법이며, 그것을 개선해 나갈 때야말로 그가 정말로 지혜롭다고 할 것이다. 부족함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나 삶에서 가장 큰 진보를 이룬 사람들조차 그들이 지닌 영적 은사는 여전히 작고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 그래서 믿는 자들은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완벽한 온전함을 얻기 위해 늘 힘써야 한다.


Taken from The Marks of God’s Children by Jean Taffin

번역: 홍종락

발췌: 생명의 삶 4월호 2018 ‘하나님 자녀됨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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